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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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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오영수

단편소설 창작에 매진한 이유

오영수의 작품에서 우선 만나게 되는 특징 중의 하나는 150여편의 작품이 한결같이 단편이라는 점이다. 단편만을 고집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글쓰기의 개성과 함께 작가로서의 일관성을 먼저 지적할 수 있다. 소설가라면 한번쯤 시도해 봄직한 장편에의 시도나 신문소설에의 유혹도 오영수는 거부하고 있다.

오영수는 자신이 줄곧 단편만을 창작하는 이유를 대담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Q : 「화산댁이」, 「용연삽화」 등은 대학 교재에도 실릴 만큼 유명하달까 단편 소설의 고전적인 수법을 꾀하고 있는데……. 가령 모파상이라든가 체호프, 오 헨리 등의 전형적인 단편 작가의 작품들이 연상되거든요. 문장이 간결명료하고 구성도 단순구성으로 되어 있고요.

A : 전에는 모파상을 많이 읽었어요. 내 생각엔 하나의 예술품을 담는 그릇으로선 장편보다 역시 단편이 더 적당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요. 내가 긴 소설을 쓰지 않고 단편 소설만을 줄곧 발표해 온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요즘은 체호프를 자주 읽습니다. 인생의 깊이를 느끼게 해서 좋더군요. 체호프는 페이소스랄까 인생에 대해 상당히 깊이 생각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대담취재, 「인정의 미학」, 《문학사상》(1973.1)


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오영수는 모파상의 비판과 지성 그리고 풍자보다는 체호프의 페이소스, 감성, 관조 등에 많은 영향을 받아 인생의 단면을 통해 삶의 깊이와 진실을 담아내기 위해 서정적인 단편소설에 치중하였던 것이다.

단편 창작에 매진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고독한 노릇」이나 수필 「해를 보내면서」에서도 찾을 수 있다.

여러 잡지와 신문사에서 좋은 조건으로 작품교섭을 받았다. 그러나 그러한 교섭에는 내가 감당해낼 수 없는 조건이 요구되기 때문에 응하지 못했다. 말하자면 융통성이 없는 탓이겠다. 그래서 본의 아닌 오해나 욕을 먹을 때처럼 고독한 때는 없다. 그러나 고독도 나에 대한 내 자신의 부실보다는 견딜 수 있다.
오영수, 「고독한 노릇」, 조선일보, 1958.12.11.


더러 잡지나 신문사에서 비교적 좋은 조건으로 연재 교섭도 받기도 하나 한번도 응하지 못했다. 그것은 첫째 역량과 건강문제, 또 대중의 기호에 맞게끔 쓸 재간이 없고 만약에 불가피한 사정으로 중도에 그만둬야 할 경우의 책임감 같은 이런- 어떻게 보면 융통성이 없다고 할까? 소심성 때문이라고 할까- 해서 본의 아닌 오해도 받고 괴짜라는 욕도 먹는다. 연재를 얻기 위해서 침을 흘리는 판인데 굴러들어온 호박을 마다하니 괴짜가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오해나 욕설도 나에 대한 내 자신의 위선이나 불성실보다는 마음이 편하다.
오영수, 「해를 보내면서」


작가 자신이 단편만 고집하고 있는 이유를 역량과 건강 그리고 대중성에 영합할 수 없는 작가의 입장 나아가 작가의 책임성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작가의 변 중에서 중시되어야 할 대목은 “그러나 어떠한 오해나 욕설도 나에 대한 내 자신의 위선이나 불성실보다는 마음이 편하다.”는 부분이다. 작가 자신이 지닌 자신의 본 모습 이상을 추구하려는 위선적 제스처를 거부하고 자신에의 성실성을 강조하고 있음이다. 우선 자기 자신에게 성실해야 한다는 작가적 신념은 소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는 오영수의 작품세계를 이해해 가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작가정신이 그의 작품세계를 주로 소박한 삶의 이야기로 엮어져 가게 하고 자전적 성격을 띠게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문학 창작관이 상대적으로 안정된 원고료 수입이 보장되는 장편 연재를 외면하고 순수 단편소설로 일관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 참고문헌 ]
이재근 「오영수 소설 연구」, 목원대 박사논문, 2011
이재인, 『오영수 문학 연구』, 문예출판사, 2000
정형남, 「향토에 묻은 오영수의 문학과 생애」, 『울산문학』 제19집, 199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