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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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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오영수

현대문학

1954년 오영수는 ‘대한교과서 주식회사’의 후원을 받아서 조연현, 임상도, 김구룡, 박재삼 등과 함께 순문예지인 『현대문학』 창간을 준비했다. 오영수는 친족이었던 오위영의 권유와 울산의 고향 사람이면서 ‘대한교과서 주식회사’의 사장이었던 김기오의 부름을 받고 서울로 직장을 옮기면서 상경했다. 1955년에는 한국문학사에서 최장수 문예지인 『현대문학』 창간에 참여하여, 평론가였던 조연현은 주간을 맡고 오영수가 편집장이 되어 본격적인 활동을 한다. 1955년에 『현대문학』 창간호를 발행하고 그해에 작가는 단편소설 「박학도」로 제 1회 한국문학가협회상을 수상했다. 이후 『현대문학』에 한국전쟁의 종군체험과 관련된 「동부전선」을 발표하면서 활발한 창작활동을 보였다.

『현대문학』 창간과 관련해서 소설가 윤정규는

“알다시피 『현대문학』은 대한교과서 사장이었던 오선생의 은사를 설득해 창간한 잡지였다. 그러나 주간이었던 조연현은 자신이 들어 창간을 하고 오선생을 편집장으로 초빙한 것으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이에 대해 오선생은 ‘욕심대로 하는 것을 우짜노?’하셨을 뿐이다.”
윤정규, 「오영수선생과의 만남」, 『울산문학』 제19집, 1992.12, p.132.


라고 적고 있다.

『현대문학』 의 운영과 관련해서 주간이었던 조연현과 편집장이었던 오영수 사이에 갈등이 많았다.

주간은 아침에 잠깐 들렀다가 딴 직장으로 가버리면 종일 사무실을 지켜야 하는 것은 내밖에 없다. 실례지만 문단거지들과 지방문인들의 시중까지 그 알량한 월급으로 감당을 못해 원고료를 쬐끔 협잡을 해서, 주간, 나, 직원 둘-그리고 한몫은 전기 거지들과 지방문인들의 찻값에 보태기 위해 아무도 몰래 서랍속에 두고, 반품을 표지만 뜯어버리고 휴지로 팔아 충당을 하기도 했다. 이 사정은 당시 미스 김이 너무나 잘 알고 또 「나와 현대문학」에 상세히 기술돼 있기에 여기에 생략하거니와 이런 것으로 해서 주간은 막역한 친구에게 내가 자기를 속인다고……그리고 ‘유다’라고 했다. 그 자신은 ‘기독’이란 말이겠다. 떠나야지, 떠나야지-
오영수, 「속 낙향산고」, 『현대문학』, 현대문학사, 1990.6, p.52.


작가는 평소에 내성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인정에 못 이기는 사람이었으며, 어떻게든 불행한 문인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했던 선인이었기에 다른 문인들을 위하거나 대접하는 일에는 적극적으로 나섰다. 여기서 벌어진 일화들은 많다. 지방문인이 찾아오면 우선 반갑게 맞아들였다. 함께 근무하던 박재삼 시인이 화장실에라도 가면 뒤쫓아가 “어이, 박시인. 방금 찾아온 분의 성함이 뭐지?”, “아니, 그것도 모르고 지금껏 대화를 나누었습니까?”, “하는 수 없지, 뭐.” 넉넉지 않은 현대문학사의 형편에도 문인들을 대접하기 위해 ‘조금’ 협잡하는 정도는 괜찮다는 생각을 갖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이러한 일들이 관행적으로 이루어졌을 수도 있는 큰 흠결로 볼 수 없는 일이기도 했지만, 이러한 일 등으로 해서 작가와 조연현 간에 갈등이 있었다. 오영수는 『현대문학』을 설립한 주역의 한 사람이었지만 이러저러한 갈등이 누적되고 위궤양으로 건강까지 나쁘게 되자 결국 1966년에 『현대문학』의 실무를 떠나게 되었다.

[ 참고문헌 ]
이재근 「오영수 소설 연구」, 목원대 박사논문, 2011
이재인, 『오영수 문학 연구』, 문예출판사, 2000
정형남, 「향토에 묻은 오영수의 문학과 생애」, 『울산문학』 제19집, 199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