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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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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오영수

본격적 문학 활동

오영수의 본격적인 문학 활동은 1950년에 <서울신문> 신춘문예 공모에 「머루」가 입선되면서부터 정식으로 시작된다. 이 시기에 이미 농촌생활을 중심으로 한 그의 작품세계가 윤곽을 드러냈다. 이어 <민주일보>에 「대장간 두칠이」를 발표하는 등 본격적인 활동을 펼치려는 시기에 한국전쟁이 터진다.

전쟁이 일어나자 오영수는 자원하여 당시 제3사단 22연대 소속의 청마 유치환과 함께 종군작가로 참전하게 되었다. 이 때의 체험들을 「종군기」( 「동부전선」), 「전우」, 「한탄강」, 「내일의 삽화」, 「두 피난민」 등의 작품에서 생생하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담아내었다. 오영수의 종군 체험은 전쟁이라는 죽고 죽이는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인간의 선성(善性)을 결코 상실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의 소설에서 보여줌으로써 인간에 대한 믿음과 휴머니즘을 옹호하고 있다. 이런 경향은 작가의 전후소설에서 분명한 주제의식으로 자리 잡고 지속적으로 드러난다.

원산을 마지막으로 종군을 끝낸 오영수는 부산으로 돌아와 학교에 복직을 하게 된다. 그는 1951년 1ㆍ4후퇴로 인해 부산으로 피난 온 중앙 문단의 작가들의 숙식을 돕기 위해 방을 마련하기도 하고 음식을 제공하는 등 나름대로 선의를 베푸는 데에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이처럼 오영수는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따뜻하게 감쌀 줄 아는 인정 많은 사람이었다.

서울 2차 수복 후인 1954년에는 ‘대한교과서 주식회사’의 사장이었던 김기오의 부름을 받고 상경했으며 1955년에 평론가 조연현이 주간을, 오영수가 편집장이 되어 순문예지인 『현대문학』을 창간했다. 이때부터 작가는 지방 생활을 완전히 청산하고 『현대문학』을 중심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서울 생활을 하면서 오영수는 1954년 제1창작집 『머루』, 1956년 제2창작집 『갯마을』, 1958년 제3창작집 『명암』, 1960년 제4창작집 『메아리』, 1965년 제5창작집 『수련』을 내놓으면서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였다.

그런데 오영수는 서울에서의 생활에 대해서 상당한 회의감을 느끼게 된다. 물론 서울 생활이 그가 작가로서의 위치를 확연히 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도시 생활에서 물질문명의 폐단을 절감하게 되어 이에 대한 싫증과 혐오감으로 가득 찬다. 또 『현대문학』의 운영과 관련해서도 주간이었던 조연현과의 사이에 갈등이 많았다.

그러했던 서울에서의 부정적인 체험은 「박학도」, 「불구」, 「여우」, 「합창」 등의 작품에서와 같이 인간성 상실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따라서 이렇게 숨막히는 서울 생활이 그에게는 어머니와 같이 푸근한 고향에 대한 향수를 진하게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그의 후기 문학의 특성인 귀향ㆍ귀농 의식과 이상향의 추구를 주제로 하는 작품들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 참고문헌 ]
이재근 「오영수 소설 연구」, 목원대 박사논문, 2011
이재인, 『오영수 문학 연구』, 문예출판사, 2000
정형남, 「향토에 묻은 오영수의 문학과 생애」, 『울산문학』 제19집, 199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