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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수 문학상 제정 및 시상경과

그동안 아세아자유문학상·대한민국예술원상·문화훈장 등을 수상했으며,1977년 5월 울주군 웅촌면 곡천리 침죽재(枕竹齋)로 낙향, 고독한 창작생활을 하다 2년 뒤인 1979년 5월 15일(음력 4월 19일) 향년 71세를 일기로 타계할 때까지 무려 150여편에 이르는 주옥같은 단편을 발표했다.

울산매일신문사는 이러한 선생의 작품세계를 높이 평가, 재조명하고 투철한 문학정신과 불멸의 예술혼을 기리기 위해 세상을 떠난 지 14주기가 되는 지난 1993년 ‘오영수 문학상’을 제정하고 그해 5월 15일 제1회 수상자로 이동하의 중편 「문 밖에서」를 선정, 시상했다.

1994년 제2회 때부터는 S-OIL(주·당시 쌍용정유)이 동참, 후원하게 돼 그해 5월 20일 현기영의 단편 「마지막 테우리」를 선정 시상했으며 1995년 5월 30일 제3회 때는 송하춘의 중편 「하백(河伯)의 딸들」과 중편 「험한 세상 다리 되어」를 선정 시상했다.

제4회(1996년 5월 30일)는 지역작가들의 창작의욕을 진작시키기 위해 본상 외에 창작기금상을 신설, 오정희의 중편 「구부러진 길 저쪽」을 본상 수상작으로 선정하고 제1회 창작기금상은 강세화 시인의 제2시집 『수상한 낌새』를 선정 시상했다.

제5회(1997년 5월 30일)는 김문수의 단편 「파문을 일으킨 모래 한 알」을 본상에,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충호의 단편 「노인의 섬」을 제2회 창작기금상에 각각 가려 시상하고 제6회(1998년 5월 30일)는 계간 『창작과 비평』1997년 여름호에 발표된 최일남의 「한 떨기 노스탤지어」가 차지했다.

20세기 마지막인 1999년 5월 31일 치른 제7회 시상식은『동서문학』1998년 가을호에 발표된 김원우의 중편 「반풍토설초」를, 제8회는 유재용의 중편 「한여름밤의 꿈」을 본상에 선정한 외에 전국의 문학애호가를 대상으로 장편소설을 공모해 강신순씨의 「나무와 새」를 당선작 없는 가작에 가렸다.

제9회는 송기원의 「폰개 성」을 수상작으로 선정, 시상하고 현대문학출신수필가회와 한국문인협회 울산광역시지회에 각각 300만원의 창작지원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상금을 대폭적으로 올린 제10회 수상작품은 백시종의 「이과수」가 선정돼 1,000만원을 수여했다.

중편 「존재의 형식」으로 제11회 오영수문학상의 주인공이 된 방현석씨는 문학상을 제정, 시상한 지 11년 만에 처음으로 울산 출신이어서 지역 문단에서도 무척 반겼다.

여류 작가로는 오정희에 이어 두 번째로 우리나라 페미니즘 문학의 선두주자라 해도 과언이 아닐 공지영의 단편 「섬-베를린 사람들」을 제12회 수상작으로 가려 시상했다.

제13회는 성석제의 「잃어버린 인간」을 선정, 상패와 함께 1,500만원의 상금을 수여한 데 이어 14회는 신경숙의 「성문 앞 보리수」가 영광을 차지했으며, 상금을 인상 2,000만원을 수여했다.

2007년 제15회 수상의 영예는 권여선의 「약콩이 끓는 동안」에 돌아갔으며, 2008년 제16회 수상자는 어린 시절 방학이면 울산을 다녀간 추억을 간직한 하성란에게 돌아갔다. 수상작품은 계간 『한국문학』 2007년 가을호에 발표한 「그 여름의 修辭」이다. 그리고 난계 선생 탄생 100주년이던 2009년은 공선옥 「명랑한 밤길」이, 2010년은 강동수의 단편 「수도원 부근」이, 2011년은 전성태의 단편 「국화를 안고」가, 2012년은 20회의 연륜이 깃든 해로 울산 출신 박민규의 단편 「로드킬」이 영광을 차지하였다. 2013년 제21회 영광의 수상자는 단편 「배우가 된 노인」으로 손홍규 작가가 선정됐다. 특히 18회부터는 상패와 함께 상금을 1,000만원 증액, 3,000만원을 수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