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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정, 이육사 문학의 향기를 찾아서

  작성자 :       작성일 : 17-04-25 15:54      조회 : 11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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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이육사 문학의 향기를 찾아서
                                                    배 재 록

김유정 문학의 향기를 맡기 위해 버스는 춘천으로 향해 달렸다.
산에는 눈이 쌓인 듯 하얀 꽃들의 정겨운 풍경이 흥이 나게 하고, 
거울이 철거된 대지에 사월의 바람이 휘둘러 가면 연초록 풀이 흔들린다.
버스에서 따뜻한 주먹밥이 아침으로 나왔다. 밥맛이 일품이었다.
행사 주최인 이연옥 <오영수 문학관장?님의 문학기행 취지 설명과 인사가 기지개를 
펴게 하며 이어지는 참가자 소개가 인화의 모드로 분위기를 바뀌게 했다.
이번이 다섯 번째 문학기행이지만 나로서는 처음 참가해 보는 일이다.       
버스의 긴 달림이 끝나고 만개한 벚꽃이 보이는 춘천 실레마을에 도착했다.
실레마을은 옴폭한 시루떡 같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 했다.
1930년대 대표 문학가인 김유정의 고향이자 그가 쓴 30편의 작품 중 12편의 
배경이 된 실레마을 전체가 김유정문학촌이자 문학의 산실이다.
김유정은 1930년대 대표적인 작가이자 한국소설의 축복이라 말한다.
서른을 못 넘기고 생명을 마감한 김유정 문학의 향기는 생강나무의 알싸하고
향깃한 내음으로 기행의 맛을 느끼게 했다.
대부분을 서울에서 생활하다 1931년에 23살의 나이로 귀향, 금병의숙이라는 야학을
설립하여 농촌계몽운동을 벌였고 2년 후 그의 처녀작 <산골 나그네>는 실레마을에서 실제로
목격한 일을 소재로 했고 등장인물도 이곳에 실존했던 인물들이라 한다. 문학촌에는
 기념관과 함께 해발 652m 금병산을 배경으로 그가 태어난 생가와 디딜방아, 정자 등이
그 시대 모습대로 재현되어 있었다.
문학촌이라 명한 것은 이곳에 김유정의 유품이 한 점도 없기 때문이다.
그가 폐병의 병마와 투병하다 숨을 거둔 후 절친 안희남이 유고, 편지, 일기, 사진 
등 유품을 보관하던 중 6.25 때 월북한 탓이라 한다.
그의 삶과 문학세계는 영상실과 전시실을 겸비한 김유정 이야기 집에서 만나 볼 수
있었는데 그의 불행한 삶과 그 속에서 꽃피운 예술세계를 접할 수 있었다.
문학촌은 2002년 8월에 개관해 연중 각종 기획 전시 및 초대전이 열리고 있다 한다.
체험과 관람시설이 잘 정비되어 있는 문학촌은 방문객들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김유정문학촌을 떠나 선비의 고장 안동에 있는 이육사 문학관으로 향했다.
퇴계 이황의 14대 손이자 문사이자 투사 인 이육사문학관은 주차장 공사 중이었다.
생존해 있는 그의 딸인 이옥비 여사로부터 그의 생생한 생애 강의를 경청 했다.
일제 때 17번이나 옥살이를 하며 민족의 슬픔과 조국 광복의 염원을 노래한 항일
민족시인 이육사(본명 이원록, 1904-1944)의 독립정신과 업적을 학문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설립됐다. 현재는 건평 135평안 2층 건물이다.
이육사 문학관은 크게 ‘문학정신관’과 ‘문학생활관’으로 구분할 수 있다.문학정신관은 1층
전시관과 2층 전시관, 영상실, 사무실, 북카페, 3층 다목적홀, 세미나실, 강의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전시실에는 이육사의 육필 원고, 독립운동 자료, 시집, 사진 등의 전시물을
비롯해 조선혁명군사학교에서의 훈련과 감옥에서 생활 모습 등을 재현한 모형이 있었고.
전시품과 함께 영상이나 설명한 패널 등이 함께 전시돼 있었다.문학생활관은 1층 사무실,
식당, 세미나실, 2층 객실8실로 구성 되어있었다
문학관 주변은 연목과 분수대, 생가모형, 청포도 밭, 야외 학습광장, 이육사 동상이 있어
이육사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아호인 육사는 대구형무소 수감번호 264에서 취음한 것. 중외일보 기자로 활동하면서
조선일보에 「말」이라는 첫 시를 발표하는 등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한다. 중국 난징의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1기생으로 1933년 졸업했다.
그 후 일제에 저항하여 「광야」, 「절정」과 함께 대표적인 시 「청포도」가 1939년
『문장』에 발표되었다. 「청포도」에는 나라를 잃고 이역에서 고국을 그리는 안타까움과
향수, 암울한 민족 현실을 극복하고 밝은 내일을 기다리는 마음이 표현되어 있다.
1944년 1월 16일 새벽, 베이징 주재 일본총영사관 감옥에서 향년 41세로 순국하였다.
옥문을 17번이 나 드나들며 민족적 양심을 유지했던 저항 문학인이었다.
그는 시, 소설, 수필, 평론 등 문학의 전 장르에 걸친 작품 활동을 했으며, 대중을 계몽하려고
노력했다. 독립 운동을 통하여 나라 사랑을 온몸으로 실천하였으며, 일제 때 민족의 양심을
지키며 죽음으로써 일제에 항거한 문학인이자 민족운동가 였다.

여행은 나를 변화시키려는 시도의 의미도 있다.
이는 체험을 통해서 가능하다. 이번 문학기행을 통해서 Change(體仁知)의 당위성을 체험했다.
체험을 통한 여행은 느끼는 것도 많고 오래 기억에 남는 법이다.
이번 오영수문학관에서 추진한 2곳의 문학기행이 그랬다. 한국현대문학사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기회였다. 삶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문학의 공간을 가다듬어 봤던 시간이
나만의 소감일까?  이육사 전집 한 권을 사들고 울산으로 향했다.
준비하고 추진하느라 애를 많이 쓴 오영수문학관에 고마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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