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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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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도문학의 고향을 찾다

  작성자 :       작성일 : 15-11-20 17:29      조회 : 68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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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탈은 늘 셀렌다. 새벽잠을 떨치고 일어날 만큼.
새벽 다섯 시 반. 울산에서 출발하는 시각이다. 나로서는 그보다도 한 시간을 일찍 설쳐야 함에도 피곤함을 잊을 정도였다. 2주 전의 경미한 사고로 손목에 감은 깁스조차 가볍게 여겨지는 새벽이었다.
오영수문학관에서 시행하는 두 번째 문학관 탐방이다. 봄보다 훨씬 많은 이들의 등록으로 내년부터는 봄가을 행사로 굳어질 것 같은 즐거운 예감으로 달리는 길. 부슬거리는 빗발사이로 희부옇게 밝아오는 바깥풍경에 마음이 먼저 채색되는 느낌이다.

4시간여를 달려서 먼저 도착한 곳은 목포문학관이다. 목포라는 지명만으로도 막연히 그리웠던 곳. 대다수 한국인의 정서에 그리움으로 자리한 목포가 행선지에 끼어 있어서 개인적으로 열악한 처지임에도 나선 길이다.
막연한 그리움으로 자리한 목포항을 배경으로 2007년도에 개관한 목포문학관은 복합문학관이다. 우리나라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4인의 문학세계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부자가 된 느낌이다.
박화성관은 1층 오른쪽에 자리하고 있다. 박화성은 우리 나라 최초의 여류작가다. 동아일보에 연재한 장편소설 '백화'로 과시한 필력이 고스란히 전시되어 있다.
우리 세대가 기억하는 대부분의 희곡을 써낸 차범석관은 박화성관과 마주하고 있다.
그의 화려한 작품세계는 물론 꽤 가멸은 집안의 귀공자였음을 알 수 있는 성장기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카톨릭 신자로서 한 편의 작품을 쓸 때마다 기도로 시작했음을 읽을 수 있게 하는 집필실, 앉은뱅이 책상에 십자고상이 얹혀있다.
2층은 평론가 김현과 극작가 김우진관이 자리하고 있다.
김현관은 2011년에 개관이 된 최신 문학관답게 시설도 현대적이다.
'이 세상을 다 읽고 가는 사람' 김현이 챙긴 또 다른 긴 이름이다.  그 이름에 걸맞은 다독가였다는 김현. 작가나 시인의 습작고통까지 헤아린 평론가라니 깜짝 반갑다. 덕분에 평론가라면 비난에 가까운 '비평'이란 말만 떠올렸는데 이제는 다를 것 같다. 
 김우진은 괜찮은 극작가로서보다 윤심덕과의 사랑으로 더 알려진 불우한 문인이다. 유교사상의 벽에 막혀 어쩌지 못한 채 현해탄에 투신한 불륜의 아이콘으로 더 알려진 까닭일까, 문학관이 바닷가에 자리한 까닭일까, 유난히 바다 냄새가 짙게 풍기는 듯했다.
입구에 전시된 지역문인들의 시화가 펄럭이는 박수로 반기던 곳, 방문객인 우리가 떠날 때는 역시 항구의 바람에 펄럭이는 손짓으로 배웅하는 길. 먼나무 붉은 열매마저 작가들의 작가혼으로 빛나는 곳이다.
깔끔한 한정식으로 점심을 먹고 들른 곳은 강진의 시문학파 문학관이다.
강진. 참 아름답고 고즈넉한 지방이다. 수십년 전에 들었던 갈갈이 사건으로만 기억되는 끔찍한 지명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트린 방문이다. 
보슬비를 맞으며 둘러보는 시문학파 문인들의 삶은 늘 그렇듯 시심에 젖어 있었음을 깨닫게 한다.
김영랑, 박용철, 신석정...
학창시절 내 감성을 자극했던 낭만적 시풍을 직접 만나는 현장이 꿈만 같았다. 이름만 들어도 맘을 설레게 하는 시인들이 삶에 찌든 오늘의 내 영혼을 40여년 저쪽으로 순간이동시킨다.
문학관 내부가 인상적이다. 자작나무 숲이 연상되도록 꾸며놓아 비록 인공적이지만 자작나무들도 시심을 수액으로 품을 것만 같다.
고스란히 보존된 영랑의 생가는 문학관 옆에 자리하고 있다. 꽤 가멸은 집안의 도령이었음을 짐작할 만한 규모의 집이 고향집처럼 정답다. 노랗게 떨어진 은행잎에 마음도 곱게 물드는 곳.
가기만 하면 누구든 반길 것 같다.
마지막 방문지인 순천문학관은 가장 설레는 코스다.
소설로도 동화로도 개인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두 분의 기념관인 까닭이다. 1킬로미터 이상을 직접 걸어들어가서야 만날 수 있는 것도 기꺼운 곳이다.
정채봉과 김승옥관이 낮은 토담을 사이로 자리하고 있다.
정채봉선생은 동화작가로서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던 작가다. 고인이 되었음에도 내 가슴에 늘 별로 떠 있는 분.
흰눈이 세상을 덮는 날 세상을 떠나고 싶다던 당신의 바람대로 선생이 떠난 날은 축복처럼 흰눈이 세상을 덮었다. 1월 9일, 내 생일이기도 해서 더욱 깊은 인연을 떠올리게 하는 분. 본의 아니게 기일까지 기억하게 되었다.
김승옥 선생 역시 이름만으로도 그리움을 갖게 하는 작가다. '무진기행' 한 편만으로도 작가로서의 모든 역량을 읽어내게 하는 작가. 많은 작가 지망생들의 교과서처럼 일컬어지는 무진기행. 그 피안의 땅을 찾듯 순천만을 걸어서 들른 곳. 선생을 그곳에서 만난 건 큰 행운이다.
2003년, 이문구 선생의 장례식에 가는 도중 뇌경색으로 쓰러져 말을 잃어버린 상태지만. 그분의 작품집에 사인을 받은 것은 오랜 기쁨으로 남을 것이다.
갈대가 서걱이고 오리 떼가 나는 곳. 시간적으로 빠듯한 생활에 지칠 때쯤 들르면 그곳은 그대로 '무진'이 될 것 같은 순천만. 하얀 머리칼을 비벼대던 갈대들의 서걱임은 떠올릴 때마다 바쁜 일상의 쉼표가 될 듯하다.
오영수문학관과의 인연으로 도대체 얼마나 많은 문인들을 만났는가.
짧은 하루해에 만난 숱한 문인들은 물리적인 시간을 더 길게 만드는 힘을 가진 듯하다.


                                                                                                              장세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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